- 찰스 3세 관련 보도들!
10세에 왕세자, 74세에 왕이 된 찰스.. "어머니처럼 평생 헌신할 것"
- 2022.09.13
지난 8일(현지 시각)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며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74)는 9일 첫 TV 대국민 연설에서 “평생 헌신하겠다는 어머니의 약속을 오늘 여러분에게 되풀이하겠다”며 “충성심과 존중, 사랑으로 영국인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즉위위원회는 10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궁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는 찰스 3세 국왕이 됐다”고 공식 선포했답니다.
찰스 3세의 즉위 과정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최대가 되는 시기를 뜻하는 ‘스프링 타이드(spring tide·사리) 작전’으로 명명됐다. 그는 12일부터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 영국 연방의 자치 지역을 차례로 방문해 추도 예배에 참석하는데, 이 과정이 ‘스프링 타이드’ 작전의 핵심으로 꼽힌다.
찰스 3세는 10살이던 1958년 영국 왕세자로 책봉된 이래 64년간 즉위를 기다리다 최고령으로 영국 왕위에 올랐다. 일찌감치 왕세자로 낙점된 만큼 오랜 시간 환경과 문화재 보호 분야 등에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펼쳤지만,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에 비해 국민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영국인들이 등을 돌린 결정적인 사건은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이혼이었다.
찰스 3세는 1981년 당시 스무 살이었던 다이애나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고 윌리엄과 해리, 두 왕자를 낳았지만 1996년 결국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찰스 3세가 전 연인이었던 커밀라와 결혼 후에도 불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영국인들은 불행한 사생활에도 사회봉사에 늘 앞장섰던 다이애나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다. 다이애나는 이혼 이듬해인 1997년 8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추모 열기가 영국 전역을 뒤덮었고, 동시에 국민의 분노가 찰스 3세를 향했다. 찰스 3세는 2005년 현 왕비인 커밀라와 결혼했다. 다이애나를 그리워하는 많은 영국인은 여전히 찰스 3세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낸답니다.
영국 매체들은 찰스 3세가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군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텔레그래프는 “찰스 3세가 오랜 시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싸워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고, 더 타임스는 “찰스 3세는 리즈 트러스 총리와 만나는 자리에서 국정 현안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가 국왕 즉위를 오랫동안 준비해 온 만큼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왕실 평론가인 로버트 하드먼은 BBC 인터뷰에서 “여왕도 그랬지만, 지금 국왕도 누구보다 오래 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왕실의 각종 재산을 관장하게 되지만, 왕위 계승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물려받는 재산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왕실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80억달러(약 39조원)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이 왕실을 운영하는 재단인 ‘크라운 에스테이트’ 소유다. 찰스 3세가 물려받는 자산은 엘리자베스 2세의 개인 자산인 5억달러 중 일부 금액이 될 전망이랍니다.
찰스 3세 즉위 "여왕처럼 헌신"..국민 반감도 적지 않아
- 2022.09.12
영국 즉위위원회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틀 만인 10일(현지 시간) 장남 찰스 3세를 국왕으로 공식 선포했다.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당일(8일) 자동으로 왕위를 계승했고 9일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접견하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찰스 3세는 첫 대국민 연설에서 “여왕이 변함없이 헌신했던 것처럼 나도 내게 허락된 시간 동안 충성심과 존경, 사랑으로 국민을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역사상 최고령(74세)으로 국왕에 올랐다.
영국은 왕과 관련된 상징물을 모두 교체할 예정이다. 군주가 머무는 곳에 거는 왕실 깃발 ‘로열 스탠더드’, 영국 관공서 깃발에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상징 문장과 영어 약자인 ‘EIIR’(Elizabeth Ⅱ Regina)가 찰스 3세의 것으로 바뀐다. 영국 국가인 ‘하느님, 여왕을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Queen)’의 제목과 가사에 나오는 ‘여왕(Queen)’은 ‘왕(King)’으로 바뀐다. 여왕의 얼굴이 새겨진 영국 파운드화 지폐와 동전도 새로 찍는다. 교체 대상인 화폐의 액면가를 합하면 110조 원 규모에 달해 교체 작업에 최소 2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답니다.
영국 BBC는 찰스 3세에 대해 “수줍음이 많고 예민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바쁜 어머니와 엄한 아버지(필립 공) 아래서 살가운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중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어린이들에게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연동화처럼 읽어주는 자상한 면모도 가졌다.
그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처럼 영국인에게 사랑받는 군주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찰스 3세의 현 부인인 커밀라 파커볼스 왕비는 2005년 재혼한 배우자다. 전 부인은 생전 영국 국민들의 ‘슈퍼스타’로 통했던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 찰스 3세는 1981년 다이애나와 결혼했으나 당시 유부녀였던 커밀라 왕비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다 1996년 다이애나와 이혼했다. 1년 뒤 다이애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숨지자 찰스 3세는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왕위 계승 서열에서 그를 빼야 한다”는 요구까지 일었다.
현재도 찰스 3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 런던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카릴 씨는 본보에 “새 국왕이 옛날에 다이애나를 버리고 카밀라와 재혼했기 때문에 다들 싫어한다. 다이애나가 살아있다면 오히려 그녀가 여왕이 될 만했다”고 말했답니다.
11일 옥스퍼드와 에딘버러에서는 시위대가 “누가 찰스를 국왕으로 뽑았느냐”고 외치며 항의하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 "굿바이, 보스 레이디" 추모 열기
- 2022.09.14
150년 넘게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시민 수천명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영국 총영사관 앞으로 몰려들었다고 현지 언론이 13일 보도했다. 홍콩 시민들은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도 추모글을 남기기 위해 4시간씩 줄을 섰답니다.
지난 8일 여왕이 서거하자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은 입구에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9일부터 16일까지 조문객을 받고 있다. 중추절(중국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낮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았지만, 홍콩인 수천명이 꽃과 여왕의 사진, 영국 국기를 들고 찾아와 수백m 장사진을 이뤘다. 시민 에밀리 응(30)씨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할머니로부터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친근하게 느껴진다”며 “영국 왕실 앞으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친절하고 겸손한 내용의 답장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영국 총영사관 측은 12일 하루 2500여 명이 추모의 글을 남겼다고 밝혔다. 추모글 작성은 매일 오후 4시까지만 할 수 있지만, 총영사관 앞에는 이날 밤늦게까지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홍콩은 1841년부터 영국 통치를 받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 당국은 영국의 홍콩 지배를 ‘100년의 국치(國恥)’라고 부른다. 하지만 두 딸과 함께 영국 총영사관을 찾은 홍콩 시민 위안(袁)모씨는 명보에 “여왕은 매력적인 지도자였다. 홍콩이 (영국) 식민지 시절 발전을 이뤄 국제 도시가 되고, 시민이 자유를 누리는 데는 그의 공로가 적지 않았다”며 “그는 홍콩 역사의 일부”라고 했다. 홍콩에서 ‘보스 레이디’라는 별명으로 불린 여왕은 1975년과 1986년 두 차례 홍콩을 방문했답니다.
홍콩의 여왕 추모 열기는 중국의 ‘전면적 통치’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안과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홍콩 내정에 거리를 뒀던 중국은 2019년 대규모 반중 시위를 계기로 홍콩 국가보안법, 선거제 개편을 통해 직접적인 통치를 강화했다. 민주당 등 야당과 자유주의 성향 시민단체, 언론은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제프 로(37)씨는 SCMP에 “여왕의 서거로 한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현재 홍콩 상황 때문인지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미국 등 각국 정상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영국을 찾을 계획인 가운데 중국은 조전으로 갈음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지난 9일 각각 찰스 3세와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조전을 보냈다. 왕치산 국가 부주석은 12일 베이징 영국 대사관을 찾아 조문했다
북아일랜드, 여왕서거에 신구교도 지역 주민들 희비 엇갈려
- 2022.09.14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두고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의 신구교도 분쟁지역인 폴스 로드와 샨킬 로드사이의 불과 10분 걸리는 도보거리 사이에서 희비가 극렬하게 엇갈리고 있다.
과거 신구교도들 사이의 유혈 투쟁의 최전선이었던 이 곳에서는 아직도 가까운 거리에서 가톨릭신자들과 신교도들이 분리된 채 모여 살고 있지만, 주민들은 영국 여왕을 대하는 마음의 거리만은 1000마일이 넘는다고 말한다.
찰스3세 새 국왕이 모친의 서거로 왕위에 오른 뒤 13일 북아일랜드를 순방했을 때 주민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유혈 정치투쟁이 아직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들의 감정은 매우 복잡하답니다.
영국 왕실에 오랜 충성을 바쳐온 신교도 주민들의 중심거리인 샨킬 거리의 주민들은 상점과 가로수 기둥마다 영국 국기를 내 걸고 젊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그린 대형 벽화 앞에 꽃다발과 슬픔에 젖은 손편지들을 가져다 놓았다.
수 십년간 유혈충돌이 계속된 북아일랜드의 치안유지를 위해 영국군이 산하에 설치했던 얼스터 방어부대에서 복무했다는 재클린 험프리스(58)는 " 우리는 여왕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지금도 여왕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찰스왕도 훌륭하게 소임을 다할 것이다. 여왕께서 훈련을 잘 시켰으니까"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 800m거리에 있는 과거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본거지이자 영국군에 대항하는 게릴라부대가 있었던 폴스 거리에서는 13일 출근하던 시민들이 "찰스왕의 방문으로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정당화 되는 건 아니다"라고 일축했답니다.
출근하던 폴 워커(55)는 1981년 감옥에서 옥중단식으로 사망한 IRA유격대의 바비 샌즈의 초상화가 그려진 3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벽화 앞에서 " 영국이 뭐라고 믿고 있든 간에 우리는 아직도 향후 아일랜드의 통일을 쟁취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52세의 바비 존스도 "찰스는 우리 왕이 아니다. 여기서는 바비 샌즈가 우리 왕이다. 여왕이든 영국 왕가의 누구든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엘리자베스 2세가 그래도 이곳에서 애정은 아니라도 존경심의 대상은 된다면서, 그 이유는 2012년에 과거 IRA사령관이었다가 북아일랜드 자치구의 부총리로 취임한 마르틴 맥기네스와 악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찰스는 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